인문학 책 월든

2020. 10. 23. 12:55카테고리 없음


각종 인문학 책에서 아래와 같이 의미있는 구절로 곧잘 인용되곤 했던 
책 「월든」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나만의 속도, 나만의 깊이를 찾아
떠나는 마음 여행, 누구도 나를
추월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 있다.
천천히 걷는 것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월든」
 
 
간디, 데일 카네기, 마르셀 프루스트 등 수많은 지성인들이 불멸의 책이라 극찬했던 이 책은,
대자연의 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긴 고전으로,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45년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들어가 소박하고 자급자족하는
'숲 생활의 산물' 이라 할 수 있다.
그는 2년 이상을 손수 통나무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물고기를 잡으면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회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단순히 자연주의적인 책이 아니라, 소로의 일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숲 생활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본 내용이라 하여, 지친 나의 심신에 자양분과 휴식이 될 책이라는 큰 기대를 하였으나..............................................
 
너무 별로였다.
아쉬웠던 두 가지 점을 책 내용과 함께 공유하자면,
 
✔ 지루할 정도로 과도한 TMI
 
책에 제4장 숲의 소리들, 제7장 콩밭, 제12장 이웃의 동물들, 제13장 집에 불 때기 등
자연주의적인 원시생활을 하면서 자연환경에 대처해 나가는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였다.
이 점은, 마치「로빈슨크루소」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상당히 호흡이 길고 내가 궁금하지 않았던 내용
(각종 곤충들의 울음소리, 농작법, 동물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의 구분과 묘사...) 까지도 과도한 정보를 늘어놓는 서사 방식이었다.
 
 
✔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편협한 시각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사회의 여러가지 통념에, 특히 세속적인 성공의 개념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산업의 발전이 인류에게 안락과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는 19세기의 일반적인 기대감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귀농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단지 자연 속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는 아니다.
바로 모든 걸 버리고 귀농할 수 있느냐라기보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고독 속에서 평생을 견딜 수 있는가? 이다.
어떤 문제이건 모두 반대해도 오직 당신 스스로 결심한 바로 그 길을 향해 홀로 걸어갈 수 있는 각오가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런 각오가 있다면 매일 아침마다 맞이하는 햇살이 
감사하고 축복으로 빛날 테이니.
빚에 쪼들려 살고, 사람들에 치이는 권태로운 일상에서 탈피하여 혼자있는 시간을 통해 나만의 철학을 가꿀 시간을 갖고, 나 자신의 내면을 가꾸는 시간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맞다.
귀농을 한다고 결심했을때 
원하는 무언가가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인지를.
도망쳐서 얻는 자유는 더 옭아맬 뿐,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지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한 것 같다.
 
 
그는 전화도 기차도 없던 시절의 옛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빈곤했지만 내면은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로웠다고 지적한다.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에서도 알 수 있고, 각종 통계수치에서도 이미 아는 바이지만,
19세기에 이를 날카롭게 지적한 20대 청년 소로우가 약간은 대단하게 느껴졌고,
여기까지는 공감을 하였다.
 
 
하지만, 
'전쟁터로 나가는 것'보다 '야생의 은둔' 을 택하는 것이 훨씬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둥
콩밭에서 농업기술 없이 이윤을 남기고 살았다는 둥
방문객이 무지하다는 둥
'왜 나처럼 못사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리석은 인간들아~~~~~~' 하는 목소리가 매우매우 거슬렸다.
자유로운 인간의 길이란 무엇인지 구도자의 참다운 모습이 무엇인지를
좀 더 깊고 너그러운 시선으로 담은 책들을 읽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왜 유명한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20대 치기어린 청년이 숲 속에서 살다보니 편협한 시각이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자만심 넘치고 심하게 공감능력이 부족한 모습이었기에 기대에 너무 미치지 못하여 실망스러운 책이었다.